“보고는 전해 들었습니다. N시의 특수 지부 “아발론"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 주셨다고요, 할로우.”
짙은 커피 향이 풍기는 공간, 피어오르는 희뿌연 두 줄기의 흐릿한 김이 하늘하늘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 흩어진다. 그 사이로 뱉어지는 짙은 연기는 알싸하고도 매캐한 냄새로 선명한 여운을 그린다. 단정하고 반듯한 차림새로 갖춰 앉은 상대를 독대하는 UGN D시의 지부장, 「할로우」 핫코 시오토는 빳빳한 담배를 걸친 손을 아래로 내리며 폐 속에 고인 숨을 내쉬었다.
“뭘 새삼스럽게 말하는 거냐. 그러라고 내게 직접 서류까지 보내 놓고선.”
흘기는 시선에 맞은편에 앉은 사내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묵직한 재떨이를 밀어 내밀었다. “뻔뻔한 녀석.” 제 상사 되는 이에게 그리 중얼거리며, 시오토는 판판한 검은 돌 위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런 대화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누가 보아도 ‘손윗사람'이라 보여질 만큼 나이를 먹은 쪽은 시오토였고, 짙은 갈색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한 사내의 얼굴은 비교적 어렸다. 또한 그런 사사로운 것이 무례하지 않을 만한 막역한 인연이었기에. 「리바이어선」, 키리타니 유고는 구김 없이 미소 지으며 재떨이를 책상 가운데에 끌어 놓았다.
“기꺼이 나서 주신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막은, 알고 계시겠지만…… 아발론 지부의 「펜드래건」 지부장은 저와 가까운 인물이었던 탓에.”
부드럽고 유려한 발화 사이에 답지 않은 공백이 존재한다. 그것은 짤막한 애도, 혹은 추억일 테다. 그런 기색조차 섣불리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일상의 수호자를 대표해야 하는 일본 지부장의 자리일 터, 시오토는 구태여 추적하지 않았다.
“저희 쪽에서 손을 쓰지 못 했다면 지금보다 더욱 상황이 기울었겠죠.”
사적인 감정을 능숙히 갈무리한 키리타니는 사무적인 어투로 본론을 꺼냈다. 지부장 「멀린」은 펜드래건과 아발론 지부에 깊은 인연이 있다. 지부장 「GRABBER」 역시 아발론 지부에 소속되어 그 지부장의 뜻을 따른 에이전트와 유대가 짙다. 둘 모두 깊이 연관되어 있는 중에, 유일한 ‘외부인'으로서 투입된 인원은 개혁파의 일원이자 「밀리언 선즈」의 직할 명령으로 행동한 「Earlgrey」 지부장뿐이었다. 이번 사건을 오직 그들만의 손으로 해결했다면, 결말은 같다 하더라도 온건파의 주요 인사에 의해 발생한 대형 사건을 개혁파 측에서 수습한 모양이 된다. 그 경우 단지 N시 지부의 유지 관리와 유산 “십자가의 방패"가 그쪽으로 넘어간 지금과 달리 또 어떤 리스크를 지게 됐을지……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기만으로도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었기에, 온건파의 주축인 키리타니는 말을 아끼며 단지 조금 곤란한 듯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이기에 더더욱, 그의 명령이 개입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의지와 목적으로 N시로 향할 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시오토는 언짢은 시선으로 그를 마주하면서도 자신을 체스 말처럼 다룬 데 대한 불만은 하지 않았다.
“고맙거든 D시 지부에 정원이나 보태. 지금도 굴러가기야 하지만…… 슬슬 내 밑으로 넘기고 손을 뗄 준비를 해야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지치신 건가요? 시오토 씨……”
키리타니의 미간이 걱정스럽게 좁혀졌다. 시오토는 늘 언젠가는 지부장을 관두겠다는 말을 달고 살아왔으나, 그건 언제나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었으므로. 당장을 도모하는 듯한 말에 그는 조심스럽게 설득하기 위해 운을 뗐으나, 시오토는 피곤하게 한숨을 쉬며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게 아니야. 핏덩이 같은 것들이 종종거리면서 내 걱정이나 한다고 몰려오니까…… 관리가 안 된다고.”
시오토는 D시에 복귀한 직후를 떠올리며 가볍게 머리를 헤집었다. 특별히 정을 준 적도 없는 에이전트들이 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 한중간까지, 위장 회사의 사무실에 불과한 지부를 지키며 저를 마중하던 모습이란… 인간적인 감동을 느끼기 이전에, 그건 시오토의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냉정히 말하자면 원치 않는 인연이었다. 그의 속사정을 알기에 차마 웃을 수 없는 키리타니는 시오토의 눈에 드리운 그늘을 잠자코 응시했다. 그런 그에게조차 괜히 신경 쓸 거리를 얹어 주고 싶지도 않은 시오토는 푸스스해진 머리를 놓고 뜨끈한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볼 거 없다. 당장 손 떼겠다는 건 아니니까. 미리 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겠다 싶어서 말한 거고…”
“언제든 떠나도 괜찮도록 대비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흘기는 시선에 키리타니는 어김없이 미소 지었다. 다만 눈썹의 힘을 빼고 늘어뜨리며. 상대가 그런 물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고집쟁이라는 것을 꿴 시오토는 대꾸 없이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과연 예상과 다르지 않은 소리가 이어졌다.
“조금 더 지금의 일상에 섞여드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돌아올 곳은, 누구에게라도 필요합니다.”
“아는 소린……”
“시오토 씨는 다 잊고 살 만큼 냉혈한은 못 되시잖습니까. 물론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시오토는 커피잔에서 눈을 들고 젊은 사내를 더욱 또렷이 노려봤다. 하하,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는 사내의 기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시오토는 인연의 사이에 맺히는 정에 약하고, 그렇기에 슬퍼하고, 흔들리고, 분노한다. 그렇기에 모든 걸 떼어 놓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떼어 놓지 못한다. 매정한 신과는 달리 인간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조차 무심코 돌아볼 만큼 사소한 모든 것에 마음을 쓰기에. 중요한 서류도, 커버로서의 직위도 다 정리하고 떠나더라도 현재 머무르는 D시의 에이전트들을 잊을 수 없겠지. 그것이 키리타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시오토의 마음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알겠으니까 거기까지만 해.”
“그럼, 충원은 내달 이내로…”
“됐어, 그것도. 실컷 붙잡고선 놀리는 거냐?”
키리타니가 짜증스럽게 3분 전의 요청을 취소하는 시오토를 보며 웃는 것도 잠시, 미묘한 침묵이 깔렸다. 마치 무언가를 재는 듯한… 가늠하는 듯한, 그런 긴장감이 어린 조짐이. 걱정을 덜어내지 못한 탓일까, 창백한 푸른 두 눈이 먼 곳을 응시하는 것을 목격한 키리타니는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열었지만, 시오토는 허락하지 않았다. 덮으려는 의도를 뻔히 보이면서도 반박을 달 수 없게,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남은 커피를 쭉 들이켰다. 키리타니는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너무 뺏었군. 이만 가야겠다.”
“벌써 일어나시는 건가요. 어렵게 여기까지 오셨는데…”
“문 밖에 있는 네 비서가 흘린 땀으로만 그 컵 하나를 채우겠습니다. 리바이어선.”
동동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턱짓하며 시오토는 겉옷을 챙겨 들었다. 단단하면서도 수척하기 그지 없는 모습을 응시하던 키리타니는 별수 없다는 듯 미미한 아쉬움을 표하며 표정으로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할로우.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던 시오토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어깨에 걸친 코트를 손가락으로 당기며 눈썹을 들썩였다. 키리타니는 짧게 망설였다.
“…건강을 생각하셔서 담배는 줄이시는 게 좋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싱겁긴. 그런 말은 비서를 통해도 충분하잖아, ……”
미련 없이 돌아서려던 시오토의 걸음이 한번 더 멈칫했다. 이번 사건에서 시오토를 움직인 목적은, 숙원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니 추가적인 그 — 저주 받을 살인마 — 의 행보가 포착된다면… 연락하겠다는 말.
복수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언제 망가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룻배와 같기에. 한 자루의 노를 저어 끝없이 이어지는 망망대해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마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한낱 인간과 같이. 운명 속으로 들어가, 바위틈에 도사리는 괴물과 대치해야 하므로……
묵묵한 시선으로 키리타니를 응시하던 시오토는 흐릿한 두 개의 달을 거두며 문을 열고 나섰다. 대기하던 리바이어선의 비서를 제치고, 직선의 복도를 걸어 나가는 걸음은 묵직했다. 걸음마다 그림자를 딛으며 우직하게, 또한 흔들림이 없이. 또한 고독하게. 그는 일상과, 또한 일상이 되어 버린 공허한 목적 속으로 곧게 걸어 돌아갔다.